20231221 시차
부제: 베트남에서 함께하는 그들의 이야기
땀찐 커피 가이드인 Hoa가 내게 "다음 계획이 어떻게 돼?"라고 묻는다. 처음엔 근처 메린에 갈 생각이었지만, 링언사를 보러 간다고 했다. 링언사와 땀찐을 같이 묶어 본다고 했는데, 경치를 보더라도 꽤 거리가 있을 것 같더라. 역시 걸어서 15~20분은 걸린다고 한다.
내가 달랏에 오기 전에 약간 흐릿한 날씨일 거라고 본 것 같은데 - 사진은 예쁘게 안 나오더라도 여행하기는 좋은 날씨 - 해가 쨍쨍하다. 눈앞이 어질어질하긴 하지만 일단 간다.
커다란 관음상이 내 눈앞에 보인다. 멀리서 봤을 땐 그렇게 큰지 몰랐는데, 가까이에서 보니까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다. 어떻게 베트남 사람들은 이렇게 큰 관음상을 세울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불당 안에는 불상 대신 사천왕 상이 있는 것 같더라. 여러모로 한국의 불교와 다른 모습이 신기했다. 종교는 태생적으로 같을지 몰라도 현지 역사와 문화가 결합되면 또 다른 특징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링언사를 나오며 다음 일정을 고민했다. 날씨는 지나치게 좋지만, 난 한 시간밖에 잠을 못 잤고, 생리 이틀 째기 때문에 몸에서 쉬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반면에 여기까지 왔는데 메린까지 봐야 하는 게 맞지 않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버스가 안 와.
땀찐 앞까지 돌아와서 20여분 기다리고 난 다음에 탄 차는, 내가 아까 달랏에서 타고 온 차다.
뭐 어쩌겠어, 달랏으로 가야지.
돌아오자마자, 숙소 체크인을 하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일어났는데, 휴대폰 시계가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 나 오늘 하루를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버린 거야?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비밀 번호를 풀어보니 8시란다. 잠금화면이 아직 시차 조정을 못해서 내가 착각한 것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숙소 위치는 시내라서, 가기 편한 곳이 두 군데가 있었다. 달랏 최대 베이커리 리엔호아와 차를 파는 Dalat 1893이었다. 오늘은 여기라도 가야겠다.
리엔호아는 반미와 요구르트 맛집이라고 해서, 닭가슴살 반미와 플레인 요구르트를 샀다. 그리고 근처 랑팜스토어에서 말린 패션푸르트와 포멜로를 샀다. 드디어 Dalat 1893이다.
처음에 숙소를 잡았을 땐 이렇게 가까운지 몰랐는데, 바로 아래네.
오토바이가 쌩쌩거리면서 달리는 그 시끄러운 거리 한편에 있는 Dalat 1893엔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께서 앉아 계셨고, 내가 와서 시향을 해보고 싶다니까 그제야 고개를 드시며, 시향을 시켜주신다.
왠지 다른 세상인 것 같아서 몽환적이었다가, 역시나 외국인이라 달랏 특산물인 아티초크를 권하시는 바람에 조금 깨긴 했지만, 그래도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