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베트남에서 함께하는 그들의 이야기
달랏 시내에선 슬금슬금 내리던 비가 랑비엔 산으로 들어가니까 우박처럼 쏟아진다. 베트남 와서 처음 내린 비인데, 비 덕분인지 그래도 오늘 랑비엔산 정상까지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뭐 할까, 우리는 K'ho Coffee에 가고 있다. 사실 랑비엔 산엔 커호족에 관련된 로미오와 줄리엣 스토리급 전설이 있는데, K'ho Coffee도 미국인 조슈아-K'ho족인 로란이 만든 유기농 아라비카 커피 전문점이다. 사실 이런 러브스토리보다도 '유기농'커피와 투어에 관심이 생겨, 달랏에서 가장 오고 싶었는 곳이었는데, 현실은 택시투어로 겨우겨우 들리고 있다.
우리를 맞이한 건 로랑이었다. 그는 비를 뚫고 달려온 우리에게 커피체리차를 건넸다.
커피체리는 커피생두를 둘러싸고 있는 겉 부분인데, 사실 메린에 가고 싶었던 것도, 이 커피체리 차를 마시고 싶어서였다. 근데 여기서 이렇게 마시다니!! 지성이면 감천이고, 될 놈 될이고;;; 아라비카 원두커피를 시고 상큼한 맛이라고 하는데, 커피체리차도 은근 시큼한 맛이었다.
와, 근데 비 정말 무섭게 내린다. 바람도 세고.
비가 오든 말든 바람이 불든 말든, 로안은 우리가 마실 커피를 추출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갔을 땐 미디엄로스팅 밖에 없었고, 선택도 에어로프레스와 프렌치프레소 두 방식으로 밖에 추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도 두 가지. 근데 에어로프레스로 내리는 거 처음 보는데, 그가 낑낑대는 걸 보니, 힘을 많이 써야 하나보다.
작은 컵이 프렌치프레소, 큰 컵이 에어로프레소로 추출한 것. 프렌치프레소로 추출한 게 더 산미가 높았는데, 같은 원두, 같은 로스팅 방식이라도 추출방식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질 수 있다니!! 참으로 놀라웠다.
프렌치프레스는 차를 마실 때도 종종 쓰는 기구라 경험이 있는데, 에어로프레스 추출도 맛이 이렇게 다르다면 사이폰도 다를 테고, 모카포트, 핀으로 추출한 것도 다를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커피 원두에 손이 간다.
커피를 만드는 동안 이곳저곳을 둘러봤는데, 이미 사진으로 보긴 했지만, 아늑하고 생생한 공간이다. 비에 젖은 나무와 커피 향이 동시에 나고, 지금 이 순간을 그만큼 잘 표현한 말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 로란과 그의 어린 동료는 크리스마스 리츠를 만들고 있다. 생각해 보니 내일이 크리스마스이브고, 그다음 날은 성탄절이다. 그들은 실제로 베트남의 휴일이 아님에도 크리스마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그는 이번 크리스마스 땐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이 베트남에 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1224 잘 있어, 달랏! (0) | 2024.01.14 |
---|---|
20231223 골목에 폭 박혀 있네 (2) | 2024.01.12 |
20231223 불상은 어디 있나요? (0) | 2024.01.05 |
20231223 내가 원하던 것 (4) | 2024.01.01 |
20231223 와이너리 투어 (2) | 2023.12.31 |